당신이 몰랐던 100가지, 추억의 문화영화 (9회)
돈의 발전과 흐름
*물물교환을 선호했던 그 때
옷감은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화폐의 기능이 있는 물품이었다. 조선시대, 엽전이라는 주화가 나왔지만 단위가 낮아 무겁게 이고 다녀야 했기에 서민들은 화폐보다는 여전히 물물교환을 선호했고, 삼베를 규격화하여 가치를 정하기도 했다.
화폐의 발전 - 문화영화 (1980년대)
*화폐의 기원
화폐의 도안에는 그 나라의 문화전통이 담겨있다. 1972년 발행된 한국 최초의 오천 원권에는 율곡 이이, 최초의 오백 원권 화폐엔 충무공 이순신, 천 원권에는 퇴계 이황이 우리나라 지폐의 모델이었다. 조개껍데기나 농기구, 돌도끼나 창을 화폐로 사용했던 우리 조상들... 위만조선 시대에 화폐 명도전이 등장했고 백제 무령왕릉에선 오수전이 발견됐다.
화폐의 발전 - 문화영화 (1980년대)
*신라, 고려의 화폐
금속 세공술이 발달했던 신라는 금귀걸이, 금팔찌, 금가락지가 화폐를 대신했다. 고려 성종 시대에 우리나라 최초의 화폐 칠전이 발행되어 유통되었고 고려 숙종 시절엔 해동통보와 고액화폐인 은병이 발행됐다. 하지만 고려의 백성들 사이에선 여전히 화폐보다는 물물교환이 성행했다.
화폐의 발전 - 문화영화 (1980년대)
*조선의 화폐
조선 숙종 시대, 상평통보가 유통되며 전국적으로 약 200년간 사용됐다. 둥근 원 모양에 정사각형 구멍이 뚫린 앞면엔 상평통보라는 글자가 새겨져있고 뒷면의 옆쪽에는 동전을 만든 관청의 약자를 새겼다. 당백전은 대원군이 경복궁을 짓고자 가치를 100배 이상 늘려 주조했던 화폐였는데 유통질서를 무너뜨린다는 최익현의 상소로 6개월 만에 유통이 금지됐다.
화폐의 발전 - 문화영화 (1980년대)
*구한말 화폐
조선 숙종 이후 많은 양의 주화가 시중에서 거래됐다. 본격적인 화폐경제로 옮겨갔으나 서민들은 여전히 물물교환을 이어갔다. 강화도조약이 체결된 이후 한일간의 통상무역은 급격히 진전되었고 일본은 무역결제수단으로 일본화폐를 만들어 침략의 발판을 마련한다. 해방 이후, 우리 화폐가 다시 발행돼 사용하게 됐다.
화폐의 발전 - 문화영화 (1980년대)
*인플레이션과 물물교환
2차 세계 대전 이후 1950년대 성장을 동반한 인플레이션이 시작된다. 한국전쟁 시절, 쌀과 함께 특정식품이 돈과 함께 임금 지불수단이 됐고 독일의 경우, 공장의 임금을 제조원료인 알루미늄으로 지급하며 돈 대신 물품을 교환하는 물물교환 경제로 되돌아갔다.
화폐의 발전 - 문화영화 (1980년대)
우리 몸속의 혈액이 흐르듯이 화폐도 가계, 은행, 기업, 세계를 순환한다. 돌고 도는 것이 ‘돈’이라는 말도 있듯이 돈을 통해 의식주를 비롯한 우리 삶에 필요한 상품의 거래가 이뤄진다. 조가비나 옷감 같은 물물교환에서 지금의 화폐에 이르기까지... 돈은 앞으로도 부와 삶의 연속을 흐르는 우리의 중요한 도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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