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몰랐던 100가지, 추억의 문화영화 (17회)
그리운 학창 시절
*콩나물시루 교실
그 시절 학교에는 아이들이 참 많았다. 그 모습이 마치 콩나물시루를 연상케했다. 전쟁 후 ‘베이비 붐’현상으로 아이들은 늘었는데 학교수는 턱없이 부족했다. 학생이 없어 학교들이 문을 닫는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어린이 입학의 날 - 대한뉴스 208호 (1959년)
초등학교 풍경 - 대한뉴스KC 866호 (1972년)
운동장 땡볕 아래는 물론 허름한 천막이나 창고까지 개조해 수업을 하기도 했다. 학생들을 한꺼번에 수용하지 못해 오전·오후반으로 나누기도 했다. 정부는 새로 학교를 짓고 학급과 교사 수를 늘리는 등 개선책을 마련했다.
두메학교 - 문화영화 (1972년)
문교 행정 - 대한뉴스 511호 (1965년)
*손꼽아 기다리던 날
국민학생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소풍과 운동회. 김밥과 달걀, 사이다는 특별한 날 먹는 대표 음식이었다. 달리기 출발을 알리는 화약 터지는 소리. 색색의 공을 던져 박을 터뜨리면 ‘즐거운 점심시간’깃발이 펄럭였다. 집집마다 아이들이 많던 시절 운동회는 마을 잔치나 다름없었다.
초등학교 운동회 - 대한뉴스KC 1509호 (1984년)
소풍가는날 - 문화영화 (1993년)
*산 넘고 물 건너
가난 속에 불타오른 배움의 열정. 아이들은 책보자기를 두르고 학교로 향했다. 제대로 된 도로도 없던 시절. 한 시간 넘는 거리를 걸어 학교에 가는 일도 다반사였다. 배움에 대한 의지는 부모님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정의 뱃길>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로 딸의 통학을 위해 섬에서 육지까지 약 8km 떨어진 뱃길을 하루 두 번 6년간 빠짐없이 이어간 뱃사공의 이야기이다.
모정의 뱃길 - 문화영화 (1963년)
*높은 교육열
그 시절,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공부였다. 때문에 명문학교 입학은 집안의 경사로 여겨졌고 명문학교를 가기 위한 입시 경쟁이 뜨거웠다. 명문 중학교에 가기 위한 어린이들의 과외가 성행할 정도였다.
치맛바람 - 문화영화 (1966년)
입시 지옥에서 어린이 해방 - 대한뉴스 685호 (1968년)
*낮에는 일터 밤에는 학교
그러나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교를 그만두는 아이들이 늘어났고 입학할 때 보다 졸업할 때 학생 숫자는 항상 적었다. 그 이유는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이었다. 당장 입에 풀칠하기도 급급했던 시절. 돈을 벌어야 했던 아이들은 낮에는 공장, 밤에는 학교에서 꿈을 키워갔다.
공장의 학원(일하면서 배운다) - 문화영화 (1977년)
풍금 소리에 맞춰 목청껏 불렀던 노래. 세상의 재미있는 것들이 모두 모여 있던 운동장. 가난했던 그때. 배고픔에 눈물을 훔치면서도 학교로 향했던 이유는 그 시절 학교는 유일한 배움터이자 친구들이 있는 놀이터였고 무엇보다 꿈을 키우는 안식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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