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몰랐던 100가지, 추억의 문화영화 (25회)
직업의 흥망성쇠
*땀방울의 가치
빠른 산업화를 이룬 한국. 달라지는 중점 산업에 따라 직업도 변화해 왔다. 수많은 일터가 생겨나고, 사라지고 그 모습을 바꾸는 동안에도 변치 않는 가치의 직업이 있다. 산과 들, 바다에서 땀 흘려 일하고, 값진 수확을 얻는 농업인과 어업인들이다.
풍년 송가 - 문화영화 (1976년)
뽈치 잡이 - 대한뉴스 제391호 (1962년)
마라도 해녀 (마라도 고향의 봄) - 문화영화 (1978년)
*사라진 직업들
시간이 흐르면 시대도 변하기 마련이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자연스럽게 사라진 베테랑들. 버스 안내양, 전화 교환원 고물을 주전부리로 바꿔주던 엿장수까지 이제는 만날 수 없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직업들이다.
주부의 바람 - 문화영화 (1979년)
버스 안내양에게 방한복 하사 - 대한뉴스 제1166호 (1977년)
전화 도수제 실시 - 대한뉴스 제396호 (1962년)
가난을 이긴 부부 - 문화영화 (1974년)
*인력 수출
1960~1970년대 정부가 수출 위주의 경제 정책을 펼치며 돈벌이를 찾아 멀리 해외로 떠나는 일도 잦아졌다. 70년대 독일에 근로자로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는 1만 8천여 명에 이르며 이외에도 다양한 나라와 분야에서 한국인의 성실함을 떨쳤다. 당시 이들이 벌어들인 외화는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독일 파견 광부 - 대한뉴스 제512호 (1965년)
세계로 뻗는 한국의 기술(인력 수출) - 문화영화 (1968년)
*경제 개발의 역군들
1960년대부터 일터를 찾아 고향을 떠나는 이촌향도 현상이 가속화되었다. 공장에서는 섬유, 가발 등의 수출 제품을 만들어 냈고 도로와 아파트, 공장을 짓는 건설 현장에서는 불이 꺼질 줄 몰랐다. 당시 밤낮없이 일하는 모습은 경제 성장의 표본이 되었지만 산업화 과정에서 인권을 경시한 우리 사회의 그늘진 흔적이기도 하다.
수출되는 가발 - 리버티뉴스 639호 (1965년)
땀에 젖은 근로자 - 문화영화 (1970년)
*안전하게 지킨다
한 끼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게 우선이던 시절. 궁핍한 나라였지만 사건 사고의 현장이면 어김없이 출동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경찰관과 소방관들이다.
형사 학교 - 대한뉴스 제400호 (1963년)
위조지폐범 체포 - 대한뉴스 제405호 (1963년)
부산 대구에 화재 - 리버티뉴스 267호 (1958년)
*달라지는 직업
사라지는 직업이 있다면 직업을 대하는 가치관이 달라지기도 한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들이 활약하고 노인들도 제2의 직업을 찾아 새로운 보람을 경험하게 되었다.
여자 형사 기동대 - 대한뉴스 제1905호 (1992년)
새마을 23집 (일하는 노인들) - 문화영화 (1974년)
한국인의 직업은 과거 1차 산업 중심에서 점점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어 왔다. 최근 8년간 우리나라에서 새롭게 등장한 직업만 8,000여 개. 그만큼 직업을 바라보는 생각과 태도도 달라졌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우리 한국인의 밥벌이는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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