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몰랐던 100가지, 추억의 문화영화 (46회)
한국의 광업 부흥기
*경제 성장의 원동력
해방 이후, 1인당 국민소득 60달러의 최빈국에서 출발해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오르는 데 크게 기여한 산업인 광업.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됐는데 1950년대 석탄 등의 지하자원은 전체 수출의 70% 이상을 차지했다.
활발한 석탄 개발 - 대한뉴스 제241호 (1959년)
화순 탄광 - 리버티뉴스 (1959년)
*광업의 전성기
급증하는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1960년대에는 활발한 탄광 개발이 진행됐다. 경북, 나진 등 전국에 새로 생긴 탄좌만 10곳 이상. 그에 따른 정책도 마렸됐는데 탄광과 연결되는 도로와 철도도 함께 개발되었다.
이런 일 저런 일 - 대한뉴스 제1025호 (1975년)
정선선 개통 - 대한뉴스 제607호 (1967년)
석탄 가격 현실화 - 대한뉴스 제636호 (1967년)
*국민 연료 연탄
1966년 석탄의 총생산량은 1,161만 톤. 적극적인 지하자원의 개발로 석탄의 자급체제에 다가섰다. 또한 석탄은 우리에게 중요한 에너지원이 되었는데 당시 석탄의 70% 이상이 가정 및 상업용으로 쓰이며 연탄은 ‘국민 연료’가 되었다.
연탄 - 문화영화 (1974년)
연탄가스를 조심하자 - 대한뉴스 제911호 (1972년)
*매몰 광부 기적의 생환
갱도의 막다른 곳까지 파고들어 간 광부들의 노력은 고도성장기를 받쳐준 밑거름이 되었다. 1967년에는 충남 구봉 광산에서 지하갱 속에 갇혔던 광부가 15일 만에 구조되어 감동을 전해주었는데 지금까지 국내 광산 사고와 관련해 최장 기록으로 남아있다.
아 살았다 - 대한뉴스 제639호 (1967년)
*광업의 변화
1980년에 접어들며 광업은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국내 금속 광산들은 그 수명이 다해가고 석탄의 수요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자원 개발의 다각화를 모색했으며 탄광촌의 모습도 변화했다.
자원개발 - 대한뉴스 제1373호 (1982년)
탄광촌 새마을 운동 - 대한뉴스 제1246호 (1979년)
오늘날 우리 정부는 광물의 합리적 개발과 이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내 원료 광물의 개발이나 폐쇄된 탄광의 활용도 그 일환이다. 산업 고도성장의 기반이 되어준 광업. 탄광이 닫히고 난 뒤 지속 가능한 광업의 미래를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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